제목구창의 공력으로 인생을 헤쳐오다-김영희
관리자
저는 대학 초년생이던 20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불립신심을 시작하여, 방학 기간마다 열리는 아침 참예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자발적으로 구창정진에 힘쓰며, 늘 ‘제목을 부르면 반드시 가피가 있다’는 믿음으로 소원을 부처님께 올렸고, 실제로 많은 현증을 감득하며 신심을 더욱 깊이 해왔습니다.
하지만 1996년, 47세가 되던 해, 문득 ‘나는 그저 기복만을 바라는 신앙을 해 온 것은 아닐까?’라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상담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던 저는 부처님의 법문과 책을 읽으며 다시 구창에 몰두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일으킨 구절이 있었습니다.
“법화경 행자의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 일이 없도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저는 가족의 안녕과 자녀들의 진로를 위해 1일 만번 구창 1,000일 기도를 결심하고 시작했습니다.
구창을 실천하며 놀라운 일들이 하나둘 일어났습니다.
대학 진학 후 공부에 흥미를 잃던 아들은 어느새 마음을 다잡고 학업과 군 복무(카투사 전역)까지 잘 마쳤고, 딸은 꿈꾸던 미국 대학에 합격하여 2년 반 만에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IMF로 인해 많은 이들이 퇴직하던 시기에도 남편은 외환은행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후에는 해외 합작은행의 은행장으로까지 임명되어 자녀 교육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1,000일이 가까워질 무렵, 자녀들의 졸업과 취업, 남편의 임기 만료 등 새로운 과제가 다가왔고, 저는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제목을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불립신심이다."
그렇게 2차 1,000일 구창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두 자녀 모두 원하는 대기업에 취업하였고, 남편 역시 은행 부행장으로 재취업하는 등 감사한 가피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시련도 있었습니다.
신청사에 큰 어려움이 닥쳐 모든 교화자들이 동요했고, 저 역시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3,000일 구창정진을 결심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모두가 떠나도 나만은 끝까지 불립 신심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봉공하던 중, 본사 청풍사 도사님과 현재의 주직 강혜창 법사님의 인도로 신청사는 다시 회복되었고, 저는 사무국장의 직임을 맡아 봉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부처님의 가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이 좋은 인연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의 재롱까지 보게 되었고, 2007년 공직에서 퇴직한 남편은 2010년, 66세의 나이에 한국 정부의 해외 원조 사업으로 우즈베키스탄 국립대 교수로 발탁되어 현재까지도 활동 중입니다.
이 소식은 그동안 저희 신앙을 의심하던 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제목구창과 봉공의 힘 덕분입니다.
이제는 받은 공덕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보은의 삶을 실천하고자 오늘도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의 작은 체험이 여러분의 신행에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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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 입으로 나무묘호렌게교를 부르는것
제목: 법화경의 제목 즉 나무묘호렌게쿄
도사: 신자와 교무들을 이끄는 절의 스승